포기하지 않은 자에게 열리는 기적의 문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도, 이번 WBC 한국 대표팀의 마지막 경기만큼은 눈을 떼기 어려우셨을 것입니다.
한국팀의 8강 진출 조건은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단순히 이기는 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반드시 5점 차 이상으로 이겨야 하고, 동시에 상대 팀에게 2점 이하만 내줘야 했습니다. 경우의 수로 따지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고개를 저었고, 해설자들은 말을 아꼈습니다. "수학적으로는 가능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달며 누구도 선뜻 희망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국 대표팀은 호주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정확히 7대 2로 승리했습니다. 한국, 호주,대만의 경기의 경우의 수를 따라서 우리는 5점 차, 2실점 이내로 요구된 조건을 단 하나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충족한 것입니다. 경기가 끝나는 순간, 방송 해설자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선수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TV 앞에서 지켜보던 국민들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승리의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도저히 안 된다"는 모든 목소리를 뚫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기적의 감동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오래된 성경 말씀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1)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한국 선수들이 경기 중반에 "이 조건을 다 맞추는 건 불가능해"라며 방망이를 내려놓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기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기적은 포기하지 않은 자들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 앞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 그 자리에, 하나님의 드라마가 펼쳐졌습니다.
신앙의 세계도 정확히 그러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배들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이미 백 세가 된 몸으로 아들을 약속받았습니다. 의학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불가능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4장 18절은 그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바라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골리앗 앞에 선 소년 다윗을 보며 모든 이스라엘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경우의 수를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크기를 보았고, 그 믿음 하나로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저는 이번 한국 대표팀의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 교회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을 떠올렸습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에도 "이제 끝났다"는 신호가 켜져 있습니까? 의사의 진단이, 통장 잔고가, 무너진 관계가, 혹은 자신을 향한 깊은 절망감이 "너는 이 조건을 절대 통과할 수 없어"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경우의 수는 우리의 계산과 다릅니다. 세상이 0%라고 말할 때, 하나님은 이미 100%를 준비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하나님을 끝까지 믿느냐, 도중에 포기하느냐입니다. 7대 2의 기적은 경기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했습니다. 9회 말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잡히기 전까지, 기적은 살아 있었습니다.
우리 신앙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는 아직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이유는,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의 기적을 터뜨리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올봄, 불가능해 보이는 그 자리에서 끝까지 믿음의 방망이를 휘두르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7대 2의 기적을 경험한 우리 대표팀처럼, 반드시 기적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은 자에게 열리는 기적의 문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도, 이번 WBC 한국 대표팀의 마지막 경기만큼은 눈을 떼기 어려우셨을 것입니다.
한국팀의 8강 진출 조건은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단순히 이기는 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반드시 5점 차 이상으로 이겨야 하고, 동시에 상대 팀에게 2점 이하만 내줘야 했습니다. 경우의 수로 따지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고개를 저었고, 해설자들은 말을 아꼈습니다. "수학적으로는 가능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달며 누구도 선뜻 희망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국 대표팀은 호주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정확히 7대 2로 승리했습니다. 한국, 호주,대만의 경기의 경우의 수를 따라서 우리는 5점 차, 2실점 이내로 요구된 조건을 단 하나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충족한 것입니다. 경기가 끝나는 순간, 방송 해설자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선수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TV 앞에서 지켜보던 국민들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승리의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도저히 안 된다"는 모든 목소리를 뚫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기적의 감동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오래된 성경 말씀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1)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한국 선수들이 경기 중반에 "이 조건을 다 맞추는 건 불가능해"라며 방망이를 내려놓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기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기적은 포기하지 않은 자들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 앞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 그 자리에, 하나님의 드라마가 펼쳐졌습니다.
신앙의 세계도 정확히 그러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배들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이미 백 세가 된 몸으로 아들을 약속받았습니다. 의학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불가능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4장 18절은 그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바라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골리앗 앞에 선 소년 다윗을 보며 모든 이스라엘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경우의 수를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크기를 보았고, 그 믿음 하나로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저는 이번 한국 대표팀의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 교회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을 떠올렸습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에도 "이제 끝났다"는 신호가 켜져 있습니까? 의사의 진단이, 통장 잔고가, 무너진 관계가, 혹은 자신을 향한 깊은 절망감이 "너는 이 조건을 절대 통과할 수 없어"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경우의 수는 우리의 계산과 다릅니다. 세상이 0%라고 말할 때, 하나님은 이미 100%를 준비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하나님을 끝까지 믿느냐, 도중에 포기하느냐입니다. 7대 2의 기적은 경기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했습니다. 9회 말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잡히기 전까지, 기적은 살아 있었습니다.
우리 신앙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는 아직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이유는,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의 기적을 터뜨리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올봄, 불가능해 보이는 그 자리에서 끝까지 믿음의 방망이를 휘두르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7대 2의 기적을 경험한 우리 대표팀처럼, 반드시 기적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